유럽의 색깔 Colors of Europe
오스트리아/ 여행지/ 이전글/

비엔나

잘쯔부르흐

인스브룩크

스바로브스키 크리스탈박물관

그라쯔

미니문두스

오스트리아

간단한 역사

기원전 15세기경 다뉴브강상에 로마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약 500년간 켈트인들이 오스트리아 지역에 정착하고 있었다.

기원후 4세기에, 소위 말하는 야만 부족들의 이동은 로마제국의 쇠퇴를 가져왔고, 프랑크인들의 왕인 샤를마뉴 (747-814)에게 그 지역이 정복되기 전까지 정치적 공백을 가져왔다. 그는 "Österreich"의 전임인 "Ostmark" 또는 "Ostarrîchi"라고 부르는 지방 (province)를 건설했다.

마자르 (Magyar)족이 907년에 그 지역을 정복했지만 955년에 오토 (Otto) 대제에게 정복되었다. 976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오토는 "Ostmark"를 레오폴드 본 바벤베르그 (Leopold von Babenberg)에게 증여했다.

이 바벤베르흐가는 976년에서 1246년까지 이 지역을 지배했다. 바벤베르흐가는 처음에 후작으로서 그리고 1156년부터 공국의 군주 (duke)로서 이 지역을 통치했고 제국은 그들에게 보다 많은 독립을 주었다. 그들은 주거지로서 Pöchlarn, Melk, Tulln, the Leopoldsberg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엔나/ 빈를 정했고 대수도원들을 건설했다. 바벤베르흐가의 마지막 군주인 프레데릭 2(Frederick II)세는 1246년에 마자르족과 싸우면서 죽게 되었다.

1246년에서 1278년에 보헤미아 (Bohemia)인들이 개입했다. 프레데릭은 계승자를 없이 죽었고, 보헤미아의 오토카르 (Ottokar)는 바벤베르흐가에 대한 소유를 주장했다. 하지만 합스부르흐 (Habsburg)의 루돌프 (Rudolf)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선출 되엇고, 오토카르는 그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것을 거부했고, 이렇게 해서 전쟁이 야기되었다.

이 전쟁에서 루돌프는 승리했고, 그는 이 지역을 오스트리아와 스티리아 (Styria)로 나누어서 그의 두 아들에게 증여했다. 이렇게 해서 합스부르흐가 통치의 토대를 만들었다.

계속해서 ....


Copyright®2012 Eucolors